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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즐거움/시사랑

오양심 시집 '뻔득재 더굿' 에 대하여

초록느낌 2009. 7. 17. 14:40

책 두 권을 받았다. 시와 그림이 담겨있는 ‘뻔득재 더굿’과 ‘뻔득재 불춤’. 청사 이동식 화백과 오양심 시인이 함께 펴낸 그림과 함께 보는 시집이다. 8월 한여름 찌는 더위에 이 책을 며칠간 읽고 또 읽고, 보고 또 본다. 시와 함께 보는 그림책이 되기도 하고, 그림과 함께 보는 시집이 되기도 하는 책. 시인의 시와 화가의 그림을 같이 볼 수 있어 좋다.

이동식 화백은 스페이스 월드에서 전시회를 가진 ‘이 시대의 마지막 풍속화가’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한국의 원로작가다. 책속에 시와 함께 있는 그림들은 뉴욕서 전시했던 청사의 작품들이어서 눈에 익어 친근하다. 뉴욕한인 여러 명의 소장품도 들어있다.

뻔득재는 시인 오양심이 나서 자란 곳. 시인의 어린 시절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전라도 땅, 오양심의 고향마을 고개 이름이다. 그녀는 나이 들어 고향을 떠나와 서울에 살면서, 어릴 때 뛰어놀던 고향의 그 뻔득재를 못 잊어 하며 시집 제목으로 정했다.

두 권의 그림시집에 담겨 있는 그림들은 우리의 지난날을 생각하게 해주는 추억의 풍경이다. 그리고 시는 고향을 향한 시인의 그리움이며, 우리 모두의 삶의 고백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고향을 떠나와 살면서, 고향을 가슴에 묻어두고 산다. 이 시와 그림은 그렇게 사는 우리의 모습이다.

쉰 살 넘은 시인의 뻔득재에 대한 그리움은 무엇일까. ‘뻔득재 더 굿’에서 시인 오양심은 이렇게 노래한다. <그렁께, 전생에서 있었던 이얀긴 갑네/ 좌우당간에 한 동네에 한 오십 호씩/ 식산 덕산 후산이라는 세 동네가 있었는디/ 오씨 집성촌이었어/ 정월 대보름이면 굿을 쳤는디/ 쌈박질을 해야 풍년이 든다고 안 헌가/ 북은 쿵쿵대며 하늘을 잡았다 놓았다 허지/ 장고는 말발굽소리를 내며 달그락 거리지/---/ 가락이 익어갈 수록 야단법석이 나는디/---/하늘과 땅 소리가 저절로 춤빨이 되어 터져나오드랑께/--->.

청사의 농악놀이 그림과 함께 있는 시 ‘뻔득재 더굿’을 읽으면 시를 이렇게도 쓰는구나 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가 남도창으로 다가온다. 그냥 눈으로만 읽는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소리를 낸다. 그녀의 시는 남도 창 가락에 고향마을의 풍경을 담고 있었다. 청사 이동식 화백의 그림과 시인 오양심의 시가 어우러져 판소리 한판을 벌여놓은 것이다. 책을 보면서 춤꾼이 되기도 하고 소리꾼이 되기도 한다.

“오양심의 시의 특징은 한의 이미지, 고향을 향한 노스텔지어의 내재율과 남도가락의 구성지고 리드미컬한 외재율이다. 현대시와 남도창의 접목이라고 본다”고 한 시인 박영남의 말이나, “시를 읽어가는 동안 내 어깨가 어느새 춤사위로 들썩였다. 시 속의 숨은 가락이 온통 남도의 싱싱한 시어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고 말한 고은 시인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이근배 시인은 오양심에 대해 “시를 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뜨거운 영혼을 속 깊이 뿌리하고 있는 시인”이라 했다. 그는 “오양심 시인은 길과 길 사이에서 만난 사람이며 아픔들을 잘 닦여진 모국어와 모국어의 운율로 곱게 빚어내 타고난 시인이다. 그리고 축복받은 시인이다. 천상에서 들려오는 영혼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시인이다”고 평했다.

오양심은 가곡으로도 불리고 있는 시 ‘나는 괜찮아’에서 <내가 태어난 곳이 바닷가라서/ 바다가 보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어서/ 어머니 묘지에서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어서/ 바다에게 힘들다고 말할 수 있어서/ 바다에 뜬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 수 있어서/ 바다를 찾아가다 쓰러질 수 있어서/ 울고 싶을 때 바다가 함께 울어줄 수 있어서..... / 파도가 될 수 있어서/ 끝내는 바다가 될 수 있어서>라고 고백한다.

이 시와 함께 이동식화백의 애기 업은 시골엄마의 그림이 있다. 목련꽃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길가에 엄마는 꽃바구니를 이고 있고, 등에 업힌 아기는 고개를 쏙 내밀고 엄마와 무슨 얘기를 주고받는다. 저고리 앞섶 밑으로 드러난 엄마의 젖가슴이 어린 날의 그리움을 안겨준다.

‘아리랑 고개’ ‘시 서편재’ 등의 시집을 비롯하여 이번에 낸 책이 5,6권 째. 시 쓰기를 하면 할수록 거듭하여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에 대한 화두가 증폭된다면서 “내가 나를 찾을 때까지 끊임없는 사색의 글쓰기가 계속될 것 같다”고 하는 시인 오양심. 그녀는 매우 한국적인 여인이다. 머리를 쪽 지고 한복을 즐겨 입는다든가, 창을 잘한다는 것 뿐 아니라, 시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그녀의 내면세계까지 신라, 아니면 고구려 벽화에 그려져 있는 아스라이 먼 옛 여인 같은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오양심의 맑은 눈동자 같은 한마디가 그녀를 더욱 시인이게 한다.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절을 한다.”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고 간절하게 절을 하다보면 알 수 없는 연민과 슬픔이 창자에서 솟기도 하고 목이 메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정화수를 들여다보면 고향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이게 그녀의 시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오늘도 고향을 그리워하며 물 한 사발에 얼굴을 비춰보고 있을까. 청사의 그림과 오양심의 시가 펼쳐놓은 뻔득재 판소리 한마당 ‘그림과 함께 보는 시집’에서 오래 전에 떠나온 고향을 생각한다.

 

-미국뉴욕에서 김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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