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김윤자
- 함께 걸어줄 당신이 그리운날에.../ 김수현
- 이해인
- 효과적인 시간 활용팁
- 하늘/김춘수
- 초록꽃나무
- 커피/윤보영
- 희망에게 / 이해인
- 한가위 / 최광림
- 풍접초 / 강은령
- 희망에 바치는 송가 / 파블로 네루다
- 행복을 적는 노트 /윤보영
- 갈대 존재의 이유
- 흘러만 가는 강물같은 세월 / 용혜원
- 도종환
- 하얀눈위로그렸던안녕이라는두글자/이민숙
- 시사랑
- 흔들리며 사랑하며 / 이 정 하
- 곽재구
- 편지지와 편지봉투 / 오규원
- 폭풍 /정호승
- 흔들리며 사랑하며 / 이정하
- 훈민정음의 우수성
- 편지 / 문정희
- 하품하는 책 / 유홍준
- 효과적인 공부 방법
- 태양의 잎사귀들 - 최정례
- 첫사랑 / 류시화
- 추억이라는 말에서는 /이향아
-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 안 도 현
- Today
- Total
열린 공간
生態 생태 - 박형준 본문
제 몸에 꼭 끼는 바위틈에 동면한 뱀들, 비늘 하나에 수천년의 원한을 기록한 차거운 종족은, 그러나 놀랍게도 열기를 그리워해왔다. 동굴 안쪽으로는 추위에 더 민감한 동족이 차례로 자리를 잡았고, 성기의 비유처럼, 동굴의 맨 끝 방에는 한꾸러미의 뱀들이 서로를 얽으며 태초의 온기를 차거운 피로 덥혀, 피안으로 넘나들고 있었다. 그들의 잠은 그렇게도 깊었다.
그들의 광증은 동면에서 깨어난 첫날에 벌어지곤 했다. 하늘로 석유의 기체가 올라가듯 타는 봄볕의 열기 속에서 벌이는 성애는, 그들만의 잔치였으니, 나른한 볕에 잠든 세계의 끝자락에서 질기게 피어오르는 생명에의 광증은, 이미 교접하고 있는 숫놈의 성기를 떼어내기 위해 흐느적거리며 하늘로 쳐들린 두 몸체 사이로 머리를 디밀게 할 지경이었다. 그들은 암놈에게 두 마리의 수컷이 교접하기도 하면서, 향연은 날이 저물때까지 계속된다.
나에게 뱀은 중학 시절 아침 산책에서 만난 두 마리의 독사와 우산대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숙명이란 산정의 미명보다 붉게 뇌를 적시며 흘러간다. 내 이름이 범종의 안쪽에 기록되기도 한 절의 연못에 연꽃이 얼마나 피었나 구경하러 가는 게 그 즈음의 유일한 취미였을 때였다. 절에서 내려다본 평야는 공중에 미동도 없이 퍼진 밥짓는 연기와 함께, 여백과 침묵의 한없는 공간에 나를 점 찍어버렸다. 風磬풍경소리가 연못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둥글게 해 주었고, 수천개의 유리창이 거울로 변하며 수면을 빛으로 물들였다. 산길을 내려오다 순전히 발길을 멈춘 것은, 촉촉히 내리는 이슬비가 방울져 흘러내리는 나뭇잎의 잎맥이 또 하나의 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피안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검은 눈을 감춘 이마가 앞으로 툭 튀어나온 소년이었다.
그때 독사가 두 마리 내 발 밑에 있었다. 마치 뇌수 속에서 또아리를 틀고 원한을 맑은 독액으로 바꾸는 것 같은, 아침 이슬비에 젖어 잠을 즐기는 검은 구덩이가 말이다. 아아 그때 내 손에 들려진 우산대는 얼마나 시누대처럼 가늘게 떨렸던가. 그 구덩이에 빠져들었다면,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빛들에 둘러싸여 늙지 않는 추억과 영원히 함께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 슬며시 찾아와, 커다란 놈이 눈치를 채고 바위 쪽으로 가버리고 나자 어미로 상상하게 만들었다. 곧 저런 뱀의 자식은 잡아 닭모이로 던져주어야 한다는 용기가 생겼다. 나는 우선 잠에 취한 놈의 대가리를 발로 조심스럽게 눌렀다. 놈의 꼬리가 순식산에 펴지더니, 요동을 치며 다리를 감으려 했다. 나는 차거운 피를 지닌 이 종족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모정을 닭에게 던져 앙갚음하려 했다. 만년설을 넘어가는 독수리처럼, 번개에 순식간에 날게가 타버리는 단 한 순간의 쾌락을 위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그런 젊은이가 아닌가 반문하면서, 눈물이 차오르는 공포를 억누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때 놈이 나의 후들거리는 다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대가리를 앞으로 쑥 내밀며 머리의 반만큼 빠져나갔다. 그놈은 고개를 돌려 내 다리를 물어뜯으려 꼬리를 휘둘렀다. 그 순간 번개가 내리치듯, 눈물은 섬광으로 바뀌며 우산대로 놈의 대가리를 수없이 쳐대게 만들었다. 놈이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되자, 나는 재빨리 발을 떼고 이번엔 뻣뻣하게 고개 쳐드는 놈의 자랑스런 목덜미를 찍어댔다. 마지막으로 바르르 떨리는 꼬리를 찬연하게 발로 짓밟아버렸을 때, 복수심은 곧 알 수 없는 회한으로 바뀌어 있음을 깨달았다. 우산대로 시체를 걸고 집으로 돌아와 닭장에 던져넣었으나, 교만한 닭들은 쪼기만 할 뿐 주인의 노고에는 털끝만큼의 관심도 없다. 사람들 또한 죽은 뱀에게는 관심이 없어, 싱거워진 나는 개울창에 그 뱀을 던져버렸다. 그런데 숙명이 또다시 내게로 찾아와 물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게 한다.
흘러가는 물에 뱀의 머리가 움직인 것이다. 짓이겨진 대가리가 조금 위로 쳐들린 순간, 그 슬픔의 율동이 내 전생애에 걸친 비애의 감정으로 변할 줄을 그때 어찌 알았으랴. 잠이 들면 탱자나무 울타리에 묻어준 그 뱀이 꿈속에 나타나 조금씩 자라났다. 내 머리맡에 입을 벌리고 독액을 뿜어대는 뱀, 나의 사춘기는 미열과 몽환 속에서 사납게 헝클어졌다. 그 뱀이 마지막으로 꿈에 나타났을 때, 어둠의 구덩이로 꿈을 채울 만큼 커다란 입을 무시무시하게 벌렸다. 나는 하얀 빛이 어디에선가 터져나오는 잠의 막을 찢고 깨어났으며, 다시는 그 꿈에 시달리지 않았다.
인류의 역사는 뱀의 비늘 하나에 기록된 작은 사건일지도 모른다. 동면을 마치고 성애를 나누는 저들이 모래 위에 고인 맑은 물을 마시며 뿔뿔이 헤어질 동안, 나른한 봄볕 아래 일어난 광증은 음습한 습지에 불의 알을 낳게 하고, 곧 알을 깨고 또 하나의 세기가 점액질에 덮혀 나온다. 스스로 머리로 둥근 점막을 뚫고 숨을 쉬며 첫 세상의 빛에 찬란한 허물을 벗을 때, 영광은 오욕으로 떨어져 그들은 영원히 기어다니는 운명을 비늘에 기록한다. 차가운 피로 인해 알을 깨고 나오면 어미와 자식은 원수처럼 등을 돌린 채 각자 살아갈 것이다. 그들 앞에 펼쳐진 미지의 숲길은 다음 세대를 기다리는 순환 고리이고, 굴레이며, 마술에 걸린 반지일 뿐이다.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문학의 즐거움 > 시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붕의 눈 - 박형준 (0) | 2010.09.30 |
---|---|
코스모스 - 이형기 (0) | 2010.09.29 |
천변 풍경 - 박형준 (0) | 2010.09.28 |
전설 - 박형준 (0) | 2010.09.27 |
물을 건너며 - 박형준 (0) | 2010.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