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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즐거움/시사랑

두고 온 사람 [이덕규]

초록느낌 2009. 6. 22. 15:29

 

 

 

 

 

사선으로 내리긋는 싸락눈발이 면도칼처럼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며 날렸던가,

젊은 부음을 듣고 몇몇이 밤도둑처럼 쇠눈 밟으며 남도 들녘을 건널 때

가물거리는 먼 불빛을 찾아 헤매다가

무너진 무연총 같은 자가웃 눈 더미를 헤치고 누군가 꽁꽁 얼어붙은 짚단 한 뭇을 꺼냈다

 

이미 오래 전에 체온 잃은 사람처럼 컴컴한 짚단 앞에 우리는 무릎 꿇고

자꾸 움츠러드는 가슴을 좁히고 좁혀 불을 붙였으나 마지막 성냥 한 알의 유황마저 팟,

비명처럼 제 몸만 태우고 불발로 사그라졌다

검게 그을린 얼굴들이 잠깐 환하게 드러났다 이내 어둑해지고

 

우리는

이제 막 죽은 사람을 흰 눈 위에 가만히 뉘어놓고 빙 둘러앉아 우는 사람들처럼......, 끝내

한 점 불씨가 되지 못한 우리는

 

 

 

 

 

 

*밥그릇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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