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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즐거움/시사랑

밥솥 - 정복여

초록느낌 2010. 11. 9. 18:01

 

 

 

 

 

 

 

엄마는 날씨를 가지고 밥을 짓는다

전화기라는 밥솥은

날마다 통화 중

덥다고 춥다고 비 온다 눈 온다

 

입도 귀도 엄마 혼자면서

감이 머니 지지직 먹통이니

오늘은 설익은 메뉴

이땐 어김없이 내가 돈 이야기를 한 이후라

그렇지만 이도 잠깐, 엄마는 언제나 바쁜 내가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

밥 냄새를 맡는 아닌척 그 자리로

날마다 조금씩 엄마를 퍼나른다

 

찌뿌듯했던 어제의 검은 콩과 너무 뜨거웠다는 그제의 팥알

이 잡곡의 날씨들도 빠짐없이 섞지만

그러나 주재료는 잘 있니? 라는 멥쌀 바탕

엄마는 내가 싫어싫어 하면서도 야금야금

걱정의 보리와 안심의 율무가 섞인

엄마 밥을 먹고산다는 것도 알아

그러니까 내 주걱은 텔레콤

엄마를 힘껏 기울인, 밥솥

내 응답은 언제나 식탁에 있다

 

 

 

 

 

 

 

 

 

 

 

-체크무늬 남자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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