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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짐승 [김남호] 본문

문학의 즐거움/시사랑

그 짐승 [김남호]

초록느낌 2009. 10. 17. 22:00

 

 

   1

 

  동그랗게 울었고, 길다랗게 울었고, 네모지게 울었다. 굵고 짧게 울 때도 있었으나 가늘고 길게 울 때도 있었다. 끝까지 울 때도 있었고, 중간에서 그만둘 때도 있었다.  울음이 중간에 끊기는 날은  듣는 사람들이 마저 울어주었다. 밤새 허기를 끌어 모아 공복으로 토해내는 그 울음은 빈 깡통소리처럼 날카롭거나 가마솥 밑바닥처럼 캄캄하였다. 울다가 기력이 다한 때에는 제 울음을 꺽, 꺽, 잘라먹으면서 울었고, 제 똥을 핥아먹으면서 울었고, 죽은 제 새끼를 찢어 먹으면서 울었다.

 

 

   2

 

 딱 한 번, 낮에 우는 그 짐승의 아가리를 본 적이 있다.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코도 없이, 아문 적 없는 칼자국처럼 벌어져 있었다. 아가리는 울음을 밀어내는 기다란 목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되었고, 뱉어낸 울음이 되돌아와 제 몸뚱이를 다시 덮치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끝났다. 가끔 그 짐승이 웃을 때도 있었지만 웃음은 혈변처럼 울음 덩어리에 묻어 있는 정도여서 굳이 그 둘을 구분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3

 

 그 짐승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갈 때 유심히 보았다. 두 개의 긴 뿔을. 긴 목의 반대쪽으로 뻗어나간 두 개의 뿔은 엉치뼈쯤에서 나란히 멈추었고, 그 뿔 위에는 제 울음소리보다 무거운 잡초가 한 무더기 얹혀 있었다. 사람들에게 그 짐숭의 이름을 물어봐도 아는 자가 아무도 없어서 그 짐승을 나는 그냥

 

 

  4

 

 아버지, 라고 불렀다.

 

 

 

 

 

김남호시집/ 링 위의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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