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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즐거움/시사랑

마지막 술집을 찾아서 [문동만]

초록느낌 2009. 9. 15. 17:28

 

 

 

 

내게는 분주하지 않은 술집만 찾아가는 지병이 있다

비는 가늘게 내리고 우산 위로 톡톡 튀는 빗방울이

파격이 없는 내 근본을 조롱하리라는 걸 알고 있다

고작 술빚을 생각하며 그 걱정에 술이나 마시는 것

 

정권이 너희들의 마음대로만 이루어지듯

간혹 있는 주접만큼은 나의 의도대로만 이루어진다

고작 곰팡내 찌든 지하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통속적인 음담과 어울리지도 않는 옛 노래를

부르며 객기에 당도하는 것

 

나도 모르는 나를 부르며 나를 모르는 너를 부르며

여기까지가 나의 마지막 파격 여기까지가

내 밤의 정거장

 

아, 아비 제비처럼 젖어 대자로 뻗은

내 발을 씻어주기도 하는 아이들아

미안하군, 살이 찌지 않은 아내여

홀로 술 먹는 밤조차 이해해주는 당신

 

내가 버는 대로 소비할 것임을

빚을 내어 술을 먹고 사람들을 만날 것임을 안다

그러니 나는 부자도 노예도 자발적 가난의 산골에도

기거할 수 없으리라

 

사는 대로 이 도시에 살아질 것이다, 사라질 것이다

내가 단골이 되려 했던 적당한 술집들은 다 망했지만

마지막 술집을 찾아야 한다

 

나는 술병이나 앓다 죽지 않을 것이다

다시 힘을 내어 걸어야 한다 그 침침한 술이라도 먹고

살아나야 한다 파격적인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어딘가 있을 마지막 술집을 찾아서

 

 

 

*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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