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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즐거움/시사랑

거름 내는 사내 [이덕규]

초록느낌 2009. 6. 29. 16:58

 

 

 

 

 

 

이른 봄 과수원에

거름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버려진 사과 알들도 속속들이

머금었던 단물을

주르르 힘껏 내뱉으며 썩고 있다

 

 

악취를 풍기며

한 치 한 뼘 흙 속으로 스며들어가

이제 먼 길 떠나는

섬약한 사과나무의

마른 발등을 적셔주고 있다

 

 

지금 저 나무들은

썩고 썩은 세상의 구린 뒷맛을

온몸으로 짚고 일어서는 중이다

 

 

봄바람에 지물거리는 눈을

반짝 뜨고

허공을 저으며 조심조심 맨발을 떼는

잔가지 연둣빛 어린싹들의

흔들림 앞에

 

 

닿을 듯, 닿을 듯 뒷걸음질로

거름을 내며 멀어져가는 한 사내의

거칠고 투박한 손을 따라

아장아장 사과나무들이 걸어간다

 

 

 

 

 

*밥그릇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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