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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즐거움/시사랑

금빛 하늘 / 도종환

초록느낌 2011. 8. 17. 14:07

  

 

  

 

 

       금빛 하늘

 

 

 

 

하루치의 노동을 끝내고 서쪽을 향해 가던 신들이

고개를 돌려 아침에 떠나온 곳을 돌아보는 동안

솟대 끝에 앉은 나무새들도 그 모습을 바라보다

엉덩이 쪽을 꼼지락 거린다

빛이 숲을 주재하던 시대는 곧 잊히고

다시 어둠이 올 것이다

주류와 자주 불화하던 나도

나무기러기가 보고 있던 금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 안에 각자 자기 영토를 세운 부족들과

어떤 시간은 충돌하고 어떤 영역에선 휴전하면서

오늘도 하루치의 벌판을 지나왔다

내가 그러건 말건 말벌들은 열심히 집을 지었고

무쇠로 된 바퀴를 가진 것들은 제 궤도를 돌았다

여름에 거두지 않은 열매들은 혼자 익다가

얼굴을 붉히며 돌아가고

가을이 오기 전에 어떤 잎은 몸을 버리고

어떤 녹색의 관엽들은 상처를 안은 채 몸을 비틀었다

우리끼리 주고받은 상처가 많아서

잘 치유되지 않는 날이 더 아팠다

나도 비주류에서도 다시 이류가 될 줄은 몰랐다

이제 강을 사이에 둔 내 안의 여러 부족들 중

한 무리가 모든 영토를 점령하고 쓸어버려야 한다는

집념을 버려야겠다

경계가 있어서 긴장도 있고

피톨들도 팽팽해지곤 할 것이다

길이 내 앞에서 몸을 틀어 꼬리를 흔들며 사라지는 걸

망연히 바라보아야 하는 날도 있었으나

언젠가는 다시 그 길과 조우하는 날이 올 것이다

신들이 마시다 남기고 간 하늘의 포도주를 마시며

나도 그들이 바라보던 쪽을 오래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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