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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를 기다리며 - 황상순 본문

문학의 즐거움/시사랑

옥수수를 기다리며 - 황상순

초록느낌 2010. 8. 12. 22:24

                                                   
옥수수를 딸 때면 미안하다.
잘 업어 기른 아이
포대기에서 훔쳐 빼내오듯
조심스레 살며시 당겨도
삐이걱 대문 여는 소리가 난다.

옷을 벗길 때면 죄스럽다.
겹겹이 싸맨 저고리 열 듯
얼얼 낯이 뜨거워진다.
눈을 찌르는 하이얀 젖가슴에
콱 막혀오는 숨
머릿속이 눈발 어지러운 벌판이 된다.

나이자신 옥수수
수염을 뜯을 때면 송구스럽다.
곱게 기르고 잘 빗질한 수염
이노움! 어디다 손을
손길이 멈칫해진다.

고향집 대청마루에 앉아
솥에 든 옥수수를 기다리는 저녁
한참 꾸중을 들은 아이처럼 잠이 쏟아진다.
노오랗게 잘 익은 옥수수
꿈속에서도 배가 따뜻하여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