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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 신경림 본문

문학의 즐거움/시사랑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 신경림

초록느낌 2010. 8. 12. 22:17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신경림

 

                      강은 가르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을 가르지 않고

                      마을과 마을을 가르지 않는다

                      제 몸 위에 작은 나무토막이며

                      쪽배를 띄워 서로 뒤섞이게 하고,

                      도움을 주고 시련을 주면서

                      다른 마음 다른 말을 가지고도

                      어울려 사는 법을 가르친다.

                     


건넛마을을 남의 나라
남의 땅이라 생각하게
   버려두지 않는다
   한 물을 마시고 한 물속에 뒹굴어
   이웃으로 살게 한다.
 
강은 막지 않는다
건너서 이웃 땅으로 가는 사람
오는 사람을 막지 않는다
짐짓 몸을 낮추어 쉽게 건너게도 하고,
몸 위로 높이 철길이며 다리를 놓아,
꿈 많은 사람의 앞길을 기려도 준다.
그래서 제가 사는 땅이 좁다는 사람은
기차로 건너 멀리 가서 꿈을 이루고,
척박한 땅밖에 갖지 못한 사람은
강 건너에 농막을 짓고 오가며
농사를 짓다가, 아예
농막을 초가로 바꾸고
다시 기와집으로 바꾸어,
새 터전으로 눌러 앉기도 한다.
 
강은 뿌리치지 않는다.
전쟁과 분단으로
오랫동안 흩어져 있던 제 고장 사람들이
뒤늦게 찾아와 바라보는
아픔과 회한의 눈물 젖은 눈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제 조상들이 쌓은 성이며 저자를
페허로 버려둔 채
탕아처럼 떠돌다 돌아온
메마른 그 손길을 따듯이 잡아준다.
조상들이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하여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수없이 건너가고 건너온
이 강을 잊지 말란다.
 
                      강은 열어준다. 대륙으로
                      세계로 가는 길을,
                      분단과 전쟁이 만든 상처를
                      제 몸으로 씻어내면서
                      강은 보여준다
                      평화롭게 사는 것의 아름다움을,
                      어두웠던 지난날들을
                      제 몸 속에 깊이 묻으면서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