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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집 한 채 / 홍일표 본문

문학의 즐거움/시사랑

지상의 집 한 채 / 홍일표

초록느낌 2009. 6. 19. 14:28

 

 

 


가건물은 잔기침을 하며 흔들리고 있다
조심, 조심 살얼음의 시간, 고추잠자리가 마른 삭정이 끝에
살며시 앉는다. 무허가의 땅에 잠시 불시착한
그대의 짧은 안식
잡았던 손을 놓고 줄줄이 일어서는 안개처럼
떠나야 한다
지상의 가건물은 시간의 마른 가지에 걸려 나부끼고,
멈추지 않는 실개천
온종일 물방울 튀겨가며 투명한 은유의 말을 전한다
발목을 적시며
뼛속 냉기로 퍼지는 傳言, 휘황한 마음의 집들이 쿵쿵 무너진다

모래알은 바람의 흰 발목을 잡고 날아다니고
나타났다 금방 사라지는 사막의 모래 언덕
시간의 미립자가 낙타의 발 밑에서 붐비고 있다
끝없이 희망의 미끼를 던지며
바람은 저만치 내달리고, 낙타의 지친 눈가에
노을이 번진다. 그러나, 걷고 또 걷고
시간은 잠시도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불암산 정상에 서면,
발빠른 시간의 몸놀림이 환히 보인다
전철이 거대한 지네처럼 도심을 가르며 달려가고,
창동 지나 재빨리 땅 속으로 숨는다
시간에 코 꿰인 트럭, 승용차, 다투어 질주하고,
키재기를 하며
땅 위에 잠시 발 딛고 서 있는 아파트, 빌딩
옹기종기 단층 가옥
자세히 바라보면 한결같이 지상에 매달려 있다
떨어질 듯 떨어질 듯
시간의 기다란 횃대에 위태롭게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