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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즐거움/시사랑

아버지의 방 / 이규리

초록느낌 2009. 6. 19. 14:02

 

 

 

 

아버지의 방



식구들은 어느새 아버지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아버지 방의 제라늄이 물기 없이 견디는 건
아직도 자를 대고 한 치 삐뚤지 않게 밑줄을 긋는
아버지의 독서법 때문이다
밑줄 친 문장 속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활자의 식구들,
활자의 피들,
아버지의 방은 흘러간 유행가처럼
과거의 시간들만 거울에 반사되어
아버지의 읽는 현재란 언제나 과거이다
내 삶의 곳곳에 밑줄을 그었던 아버지,
아버지의 밑줄을 빠져 나오지 못한
욕망들이 울며 잠들던 때
퉁퉁 부은 내 아침은
겉절이 된 배추처럼 고요했으나
아무도 모르게
물주름으로 쌓았던 희망
은단풍잎처럼 뒤가 바랠 때에도
아버지 밑줄을 풀지 않고
몰래 괄호 밖으로 뺘져 나온
나의 할자들 우는 소리
아.버.지.배.가.고.파.요.








*앤디 워홀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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