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즐거움/시사랑

덩굴 장미가 피어 있는 골목 - 김영남

초록느낌 2011. 10. 19. 15:28

 

 

 

 

  장미는 욕심이 많다. 내 눈 잡아당기고 손 잡아당기다가 모두 빼앗아 가버린다. 먼 하늘도 헐어 가 돌려주지 않는다. 그런 곳에선 직박구리도 '그래선 안 되지 안 되지' 하며 쉴 새 없이 화살을 쏘며 나온다. 조그마한 게 어디에다 그 많은 것 숨겨둘까. 욕심이란 형체 숨기고 의도만 드러낸 가시, 나는 그 앞에 잠시 거대한 깡통으로 앉는다.

 

  장미는 가르친다 윤리 선생처럼. 상징에 깃봉 세우고 나의 깡통을 두드리며 가르친다. 깡통이 갑자기 달아올라 난폭해지고 거기에서 나온 사람들도 골목을 배회한다. 한 무리는  늦은 밤 경찰서로 붙들려가고 또 한 무리는 해장국을 다음 날 아침까지 먹는다. 그들은 정원을 가지고 있었지만 허술한 울타리 때문에 꽃들이 모두 도망간 사람들, 나도 해바라기 도망간 언덕이라 여기며 고개 끄덕인다. 

 

   나는  흰 장미의 목을 처형한다 붉은 장미를 반역했다는 이유로. 흘리는 하얀 피를 들이키다가 이 목을 어디에다 매달까, 아니면 돌아가 철조망에 돌려줄까 하고 고민한다. 반환은 붉은 장미의 굴욕이라며 붉은 벽돌들도 하숙집 아줌마들을 대동하고 펄럭인다. 돌아보니 랭커스터 가 군대가 스크럼 짜고 길목 여기저기에 진군해 있다. 벌써 높은 성곽도 기어오르고 있다. 함락의 모습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는 게 갑자기 불안해진다.

 

   저런 처절한 왕권 다툼은 어느 편에 서기 힘든 것, 나는 요크 가를 이해하며 우리 공화국을 생각한다. 그러다가 양 왕가(王家) 를 사랑하기로 한다. 평화로운 왕가 골목으로 야채 판매 트럭이 마차처럼 지나간다. 나는 꺾인 길을 세탁소 훨씬 지나서까지 펴며 불안을 행복으로 바꾼다.

 

 

 

 

 

 

 

 

 

시집/ 가을 파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