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즐거움/시사랑

[스크랩] (미치겠네) …… 함성호

초록느낌 2011. 4. 7. 17:10

 

 

 

 

 

 

 

 

 

 

우체국에 불이 났다네

우리 집 차도와 인도의 경계석이 박살났네

며칠은 청구서가 배달되지 않겠다고

사람들은 불구경을 하면서도

우리 집 경계석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네

미치겠네

경계석이 무너진다고 악을 써대도

소방관들은 한가롭게 불꽃에 물을 주고 있네

아내는 큰일 났다 큰일 났다 하면서도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나는 경계석 근처에서 안타까워 떠날 수 없네

미치겠네

소방차 바퀴는 너무 무거워

우리 집 경계석이 버틸 수 없네

아무도 우체국에 맡긴 사연은 없는지

사람들은 불꽃에 귀를 기울이다

집으로 돌아가 고기를 굽고 있네

미치겠네

우리 집 경계석은 모양도 좋고 높이도 적당해서

앉아 있기 좋았다네

우체국에 불이 났다네

우리 집 경계석도 박살났다네

미치겠네

 

 

 

 

* 키르티무카 / 문학과 지성사, 2011. 2. 28.

 

출처 : 시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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