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즐거움/시사랑

설야 - 이외수

초록느낌 2011. 1. 24. 23:30

 

    설야  -  이외수



    사람들은 믿지 않으리
    내가 홀로 깊은 밤에 시를 쓰면
    눈이 내린다는 말 한 마디

    어디선가
    나귀등에 몽상의 봇짐을 싣고
    나그네 하나 떠나가는지
    방울소리
    들리는데
    창을 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함박눈만 쌓여라
    숨 죽인 새벽 두 시

    생각 나느니 그리운이여
    나는 무슨 이유로
    전생의 어느 호젓한 길섶에
    그대를 두고 떠나 왔던가

    오늘밤엔
    기다리며 기다리며
    간직해 둔 그대 말씀
    자욱한 눈송이로 내리는데

    이제 사람들은 믿지 않으리
    내가 홀로 깊은 밤에 시를 쓰면
    울고 싶다는 말 한마디

    이미 세상은 내게서 등을 돌리고
    살아온 한 생애가 부질없구나

    하지만 이 시간 누구든 홀로
    깨어 있음으로 소중한 이여
    보라 그대 외롭고 그립다던 나날 속에
    저리도 자욱히 내리는 눈

    아무도 걷지 않은 순백의 길 하나
    그대 전생까지 닿아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