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즐거움/시사랑

먼 저 달 - 김점용

초록느낌 2010. 11. 11. 15:26

 

 

갯가 촌놈들 아니랄까 봐

청량리 수산시장에서 비린내 맡고 살 비린내도 그리워

붉은 등불 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는데

다락방 같은 어둠 속에서

그러나 몸 섞지 않은 건

내 그것이 서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쭙잖은 페미니스트여서가 아니라

멀리 있는 애인을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라

그냥,

그냥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인데

그녀는 날 자꾸 의심했지, 할 거면 빨리 하자고

자기도 장사해야 하니까 잡담으로 시간 끌지 말자고

나는 김중식의 시집을 꺼내 라이터 불로

'食堂에 딸린 房 한 칸' 을 축측하게 들려주었는데

그녀는 나랑 연애하고 싶다며 보채다가

묻지도 않는 먼 고향 얘기며 가족,

팬시점 주인이라는 장래 희망을 나직나직 들려주었는데

그녀에게 시집을 안겨주고

삐걱삐걱 목조 계단의 불안한 음계를 따라 나와

툭 터진 하늘 올려다볼 때

먼저 나온 친구 녀석 쿵명스럽게
짜식, 디게 오래 하네

그래 임마, 저 달도 나한테 걸리면

오늘 밤 못 잔다!

먼 저 달

 

 

 

 

 

 

-메롱메롱 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