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즐거움/시사랑

달은 창백한 시간 속에 산다 - 박형준

초록느낌 2010. 9. 24. 23:55

 

 

 

 

 

 

아그배나무에 걸려서 철썩이는 무덤,

족보에도 나오지 않는 조상들이

묘지를 거닌다, 개 짖는 소리 들려온다

마을 밖 공동묘지를 비스듬히 굽어보는

우리집 밭둑 아그배나무 아래

철썩이는 인광을 지고, 희디흰 살결들이 앉아

서리를 뿜어대는 어지러운 꿈,

기나긴 겨울밤의 옛이야기가 찰랑이는

머리맡 빛나는 수면에,

귀신꿈에 씌어 잠이 깨 앉으면

마음은 진전되곤 하였지

식구들이 밤중에 부화시키려고

한번쯤 앉았던 달,

버려진 무덤을 철썩이며

아그배나무 위로 올라가는 물소리,

만조가 된 요강이, 창백한 시간 속에 빛날 때

 

공중에 걸려 있는 희디흰 엉덩이,

어머니도 누이도,

죽은 할머니도

앉았다 간 달.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