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즐거움/시사랑
불량한 계절 [ 이병률]
초록느낌
2010. 3. 20. 11:26
불량한 계절
ㅡ 준이가 나보고 연락하지 말라더라,
그도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ㅡ 근데 너는 왜 내가 전화를 하면 아무 말도 안 하냐,
네가 나에게 그렇게 묻는 데 이유가 있는 것처럼
얼마 동안 그는 아무 데서나 전화를 걸어왔다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기도 하고
지방의 먼 어디이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빌려 전화를 걸어 달라고 했다
ㅡ 이 분이, 친구 분께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요, 잠시만요
그렇게 연결이 되어도 나는 고약하게도
어, 어, 어, 하고만 전화를 받았다
응,응,응, 하지 않은 건
귀로부터 멀리 전화기를 떼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 할 수 없었던 것은
그 소리에
사박하게 아무 말도 없이 전화를 끊을까 봐서
그 뚝 하는 소리를 듣고도 내가 다시 전화 걸 수 없게,
너는
불량한 계절의 어느 곳을 지나고 있어서
-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