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즐거움/시사랑
모래알 유희 / 나희덕
초록느낌
2009. 8. 12. 13:16
네가 벗어던진 물결이
오늘 내 발목에 와 찰랑거린다
선생님, 저예요,
저는요, 배를, 너무, 타고, 싶었어요,
항해사가 되어, 먼, 아주, 먼, 바다에 나가,
영영,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오그라든, 왼손 때문에,
항해사가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손이, 다시 펴질 수도, 없잖아요,
기억나세요, 제가 늘, 왼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거,
그래도 사람들은, 한눈에, 알아차렸죠,
제 손이, 다시 펴질 수, 없다는 걸, 선생님은,
주머니에서, 제 손을, 가만히, 꺼내어 잡아주셨지요,
선생님, 죄송해요, 인사도 못, 드리고 와서,
그때, 복도에서, 만났을 때,
먼, 길, 떠난다는, 말이라도 전할걸,
그래도, 바다에 오길, 잘, 했어요,
붉은 흙 대신, 푸른, 물이불을 덮으니까,
꼭, 요람 속 같아요, 그러니 제 걱정, 마세요,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던, 세상이,
여기서는 그냥, 출렁거려요, 잡을 필요도, 없어요,
선생님, 제가, 보이세요,
유리도, 깨질 때는, 푸른, 빛릉, 띤다잖아요,
부서지고, 부서져서, 나중엔,
저, 모래알들처럼, 작고, 투명해질, 거예요,
흰 물거품을 두 손으로 길어올렸지만
손 안에 남은 것은
한줌의 모래
아, 이 모래알이 저 모래알에게 갈 수 없다니!
시집/야생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