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즐거움/시사랑
빗방울에 대하여 / 나희덕
초록느낌
2009. 8. 12. 12:56
1
빗방울이 구름의 죽음이라는 걸 인다언 마을에 와서 알았다
빗방울이 풀줄기를 타고 땅으로 스며들어
죽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2
인디언의 무덤은
동물이나 새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빗방울이 멀리서도 길을 찾아올 수 있도록
3
새 형상의 무덤은 흙에서 날고
사슴 형상의 무덤은 아직 풀을 뜯고 있다
이 비에 풀은 다시 돋아날 것이다
4
나무들은 빗방울에게 냄새로 이야기한다
숲은 향기로 소란스럽고
오래된 나무들은 벌써 빗방울의 기억을 털고 있다
5
쓰러진 나무는 비로소 쓰러진 나무다
오랜 직립의 삶에서 놓여난
나무의 맨발을 빗방울이 천천히 씻기고 있다
6
빗방울은 구름의 기억을 버리고 이 숲에 왔다
그러나 누운 뼈를 적시고
구름과 천둥의 시절로 돌아갈 것이다
7
구름이 강물의 죽음이라는 걸 인디언 마을에 와서 알았다
죽은 영혼을 어루만진 강물이
햇빛에 날아오르는 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시집/야생사과/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