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즐거움/시사랑

아무도 오지 않는 오후 [고영]

초록느낌 2009. 7. 9. 16:11

 

 

 

 

이제 아무도 오지않는 나에게 돌아가련다.

아무도 없는 오후 다섯 시는 너무 무서우므로.

블라인드 밖 은행나무엔 불혹이 생生의 전부인 햇빛들이 하늘로 돌아가기 위해 분주하다.

식탁 위 꽃병엔 제 그림자를 먹어치우는 개운죽의 부질없는 자맥질.

칼날 잎사귀는 오후 다섯 시의 고요를 넘어

저녁 여섯 시의 적막을 향해 뻗어간다.

 

창窓은 언제나

나와 무관한 경계에 있다.

 

너무 오랫동안 창을 닫고 살았다.

그 옛날 아버지가 심은 포도나무처럼 푸른 잎사귀를 갖고 싶었지만

내 머릿속엔 항상 늙은 시간만이 누렇게 떠 있었다.

아버지는 왜 하필 불혹 넘어 나를 세상에 내놓으셨을까

ㅡ돌이킬 수 없는 실수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

태어나면서부터 내 모든 것은 이미 폭삭 늙어버렸으므로,

 

내게로 돌아가자는 이 다짐은 오후 다섯 시가 지나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이긴 한가

아무도 오지 않는 오후,

낮잠에 빠진 것도 아닌데 자꾸 죽은 아버지가 보인다.

아버지는 생전보다 더 말이 없다.

그런데 왜 하필!

 

나는 이제 시간을 믿지 않는다.

푸른 잎사귀는 영원히 푸른 나무의 몫이다.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