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즐거움/시사랑

황야의 건달 [고영]

초록느낌 2009. 7. 5. 22:18

 

 

 

 

어쩌다가, 어쩌다가 몇 달에 한 번꼴로 들어가는 집. 대문이 높다.

 

용케 잊지 않고 찾아온 것이 대견스럽다는 듯

쇠줄에 묶인 진돗개조차 꼬리를 흔들며 아는 체를 한다.

짜식, 아직 살아 있었냐?

 

장모는 반야심경과 놀고 장인은 티브이랑 놀고

아내는 성경 속의 사내랑 놀고

아들놈은 리니지와 놀고

딸내미는

딸내미는,

 

처음 몸에 핀 꽃잎이 부끄러운지 코빼기 한 번 삐죽 보이곤 방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다.

그나마 아빠를 사내로 봐주는 건 너뿐이로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고 황송하구나, 예쁜 나의 아가야.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식탁에 앉아 소주잔이나 기울이다가

혼자 적막하다가

문득,

 

수족관 앞으로 다가가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블루그라스야, 안녕! 엔젤피시야, 안녕!

너희들도 한 잔 할래?

소주를 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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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직장 때문에 오랜만에 들어간 집에서, 화자를 반겨주는 것은 쇠줄에 묶인 진돗개뿐이다.

가족들은 각각  자기 일에 빠져 있고, 오랜 만에 들어간 가장은 혼자 소주를 마신다.

이러한 상황이 처음은 아닌 듯 모든 것은 극히 지연스럽다.

무관심이 이미 편안해진 상황,

비인간적이고 삭막한 상황에 저항해보려는 화자의 행위는 고작 열대어가 있는 어항에 소주를 붓는 일뿐이다.

일종의 주사 酒邪 로 치부될 수 있는 이 우스꽝스러운 행위에는 삶의 페이소스가 짙게 묻어 있다.

화자의 일상을 그려내는 부분에서 시인은 수사적인 표현을 가능한 배제함으로써 언어의 마감을 최소화 한다.

이는 한껏 위축된 화자의 처지와 심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상황과 인물, 언어가 잘 어우러진 한 편의 시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유형의 시가 아무 걸림 없이 죽죽 읽히는 것은 쉽게 쓰여서가 아니라 시인이 의도적으로 온힘을 빼고 있기 때문이다.

 

-해설:문혜원/문학평론가,아주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