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즐거움/시사랑
바람의 꽁무니를 따라 걷다 [고영]
초록느낌
2009. 7. 3. 14:42
삼거리 이발소를 지나온 바람이 말끔하다.
빗방울을 뿌리기 전 바람을 먼저 보여주는 건 하느님의 지나친 친절이다.
이런 날 사람들은 부적처럼 가방에 우산을 넣고 다닌다.
삼거리 코너 제과점 앞에서 파란 신호를 기다리다가
어느새 나는 붉은 신호등에 익숙해져 간다.
급하게 달려가는 저 바람에게 안전운행을 권하고 싶다.
신호등이 바뀌자 바람을 쫓아가던 자동차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브레이크를 밟는다.
킥킥, 푸념하지 마라,
한 번 놓치면 다신 잡을 수 없는 게 어디 바람뿐이던가.
삼거리 정거장 길게 목을 늘어뜨린 코스모스가
온몸으로 바람을 마시고 있다.
비디오방 TV화면에는 벌써 장대비가 내린다.
사내는 직감적으로 바람을 끌어당겨 냄새를 맡는다.
쯧쯧, 아무래도 오늘 장사는 글렀군.
비님께서 한몫 단단히 하실 모양이야. 사내는 어쩌면
소주잔에 바람을 채워 마시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지 모른다.
그땐 정말 바람과 함께 사라져도 좋.았.다.
거리는 재빠르게 어둠 속으로 발을 옮긴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다 말고 그냥 바람을 따라 걷는다.
멀리 숨가쁘게 달려가는 바람의 꽁무니가 보인다.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