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즐거움/시사랑

명일(命日)[ 이덕규]

초록느낌 2009. 6. 29. 16:42

 

 

 

 

 

장마였다

햇볕이 잠깐 쨍하고

뒷산 젖은 풀섶을 말리는 동안

처마 밑 빗물이 가득 고인 양동이에

이따금 마른 낙숫물이 떨어져

둥글게 파문이 일었다

그 속에 잠긴 삭은 고무신 한 짝이

잃어버렸던 제 빛을

다시 하얗게 찾아갔다

마당 끝에 앉아 시궁모래로

놋제기를 닦는 어머니

바닥에 살짝 닿은 치맛단이

맹렬하게 습기를 빨아올렸다

눅눅하게 젖은

보리짚불 흰빛 연기가

집 안 구석구석을 핥으며 맴돌았다

일 년에 한 번 오는 먼 일가붙이가

힘겹게 마당에 들어섰다

아궁이에서 건수(乾水)가 터져 흘렀다

 

 

 

 

 

 

 

*밥그릇 경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