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즐거움/시사랑
이름이 없으면, 장미의 향기도 사라지리라 / 함성호
초록느낌
2009. 6. 19. 15:07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괴롭다
얼마나 가슴 깊은 곳에서
너의 이름을 불렀는지
그만, 마음이 흐려져버렸다
어떻게 너를 잊어
우리 영영 이별할 수 있을까?
어느 외마디 비명 소리라도
너의 이름이 아닌 것이 없으니
이름이 없으면,
이 사무치는 불의 마음도 사라지리라
씨앗은 숲을 괴로워하니
숲의 나무가 거리의 나무에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잎과 줄기를 반복해서 피워 올리니
왜 늙음을 경험하는 것일까?
누가 땅속 깊은 곳에 있는 그의 이름을 불러
어떻게 너를 잊어, 우리 서로 모르는 채
자주꽃방망이 핀 습지를 지나칠 수 있을까?
어두운 너를 깨우는 것도 늘 나였으니
너는 항상 겹겹의 옷을 입고
걸인처럼, 우리가 하나하나 그 남루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추위에 떤다
다시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게
꽃을 보려거든, 이름 없이 태어나라
봄 한 시절에 피는
저게 무슨 꽃인지 나는
그해 여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얼마나 고요히 너의 이름을 불렀는지
몸은 안개처럼 흩어져
너의 이름 아닌 것이 없으니
이름이 없으면
속으로만 한없이 부르던 노래도
세상의 모든 향기도 사라지리라
詩 함성호
<너무 아름다운 병>, 문학과지성사, 2001년
이름이란 무엇이지?
장미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고 해도 그 향기는 여전히 아름다운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