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즐거움/시사랑

순두부찌개 / 이은유

초록느낌 2009. 6. 19. 14:56

 

 

 


폭격을 맞고 쓰러지고 싶었다
우레처럼 쏟아지는 고통 속으로 몸을 던지고
작은 깨우침을 하나 얻고 싶었다

인생이란 예고되는 것인지 모른다
되고 싶지 않은 그런 인생이 두려웠지만
불길한 사연이 조울증으로 시달렸다
그 조짐을 피하기가 힘들었다

풀리지 않는 밤들은 언제나 폭우가 쏟아졌다
갑자기 찾아오는 실의(失意)처럼 열정이 사라지며
낙뢰에 맞는 듯 비틀거리고 싶은 것이다
마음 안에 불을 질러 파멸 속으로 끌려가며
지우고 싶은 것이다 버리고 싶은 것이다

아픔은 조용히 구석으로 몰리고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은 떠나온 길처럼 불편했지만
아픔은 낮게 타일렀다
익숙해지며 닳아지는 것이 기쁨이었다
그러면서 인생이 익어갔다

유배지를 찾아 나선 그런 다음 날 아침이면 보글보글
아픔이 끓고 있는 순두부찌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