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즐거움/시사랑
숨구멍 / 조용미
초록느낌
2009. 6. 19. 14:25
언 못에 싸락눈이 덮인다
못에 숨구멍이 나 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의 정수리에 뚫려 있는
얇은 창호지 같은 숫구멍처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숨구멍을 가지고 있다
바람이며 땅기운이 드나들기도 하고
영혼이 숨을 내뱉기도 하는
그 구멍은
얇은 막으로 덮여 있다
얼음이 덮이니
나무그늘 아래로 물이 파랗던 여름보다
물은 더 살아 쌔근거린다
아무리 두꺼운 얼음도 물을 다 덮어버릴 수는 없다
눈 덮인 못에 검은 숨구멍이
여럿 나 있다
물이 숨을 내뿜는 곳이다
어떤 숨구멍은 장수하늘소를 닮았고
어떤 것은 거미줄을 치고 있는 거미를 닮아 있고
저 숨구멍은
원생동물인 아메바를 닮아 있다
못이 숨을 쉰다
저 못은 답답한지 우묵하고 검은 숨구멍을
가끔 들썩이고 있다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이 어쩌다 숨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이 있다
그럴 때 숨구멍은
가장 큰 숨을 쉰다
- <현대시> 2004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