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즐거움/시사랑

저 환장할 비행 / 류외향

초록느낌 2009. 6. 19. 13:47

 

 

 

 

 

이상도 하지

기러기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날아가는데,

날아가도 날아가도 그 자리인데,

가을이 이 깊고 서늘한 들판

저 먼 모퉁이를 돌아가며

더 이상 가을이라 부를 수 없는

뒷모습을 남겨두었는데,

 

깃털이 우수수 떨어지며

때 이른 첫눈처럼 내려

천지를 새하얗게 뒤덮는데,

깃털 빠진 기러기들 그러나

앙상하게 날아가고 또 날아가는데,

아무데도 가지 못하는 저 환장할 비행

다독이고 숨죽여 들어야 할 소리 무엇이 그리 많아

저리 오래 걸음을 멈추고 있는 것인지

 

이 비루한 들판을 떠나지 못하는

저들의 환한 뼛속을 들여다보며

나는 어떤 후생을 꿈꿀 수 있는 것인지

 

당신의 몸속에서 헐벗은 목숨을 연명하다

한 줌 재가 되었을 때 그때

나는 사랑일까 거짓일까

 

이상도 하지

뼈만 남아 뼈만 남아 그 자리인데,

아무도 눈 들어 하늘을 보지 않는데,

자꾸만 날아가고 날아가는 기러기 떼

 

 

 

 

 

 

<꿈꾸는 자는 유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