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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즐거움/시사랑

사려니 숲길 / 도종환

초록느낌 2011. 8. 28. 12:28

 

 

사려니 숲길

 

 

 

어제도 사막 모래언덕을 넘었구나 싶은 날

내 말을 가만히 웃으며 들어주는 이와 

오래 걷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보다 다섯배 열배나 큰 나무들이

몇시간씩 우리를 가려주는 길

종처럼 생긴 때죽나무 꽃들이

오리 십리 줄지어 서서

조그맣고 짙은 향기의 종소리를 울리는 길

이제 그만 초록으로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는

산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것들을 주체하기 어려운 날

마음도 건천이 된 지 오래인 날

쏟아진 빗줄기가 순식간에 천미천 같은 개울을 이루고

우리도 환호작약하며 물줄기를 따라가는 길

나도 그대도 단풍드는 날 오리라는 걸

받아들이게 하는 가을 서어나무 길

길을 끊어놓은 폭설이

오늘 하루의 속도를 늦추게 해준 걸

고맙게 받아 들일 삼나무 숲길

문득 짐을 싸서 그곳으로 가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라산 중산간

신역(神域)으로 뻗어 있는 사려니 숲길 같은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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