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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힘’ 때문일까요, 밑동 잘린 꽃에 새잎이… 본문
꽃 옆에 나란히 앉아 명상하니
내 몸에도 새잎 돋는 듯했습니다
늘 지치고 목마르고 불안하고…
사막에서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연극 연출을 하는 친구가 병문안을 오면서 장미 꽃다발을 가지고 온 적이 있었습니다. 꽃병이 없어서 그냥 작은 질항아리에 물을 담아 거기 놓아두었습니다. 한 열흘 지나면 시들겠지 생각하고 그냥 창가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십 일이 지나도 꽃은 그냥 있었습니다. 한 달이 넘으면서 잎이 시들기 시작하더니 두 달이 넘으면서 새끼손톱만한 새잎이 나는 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자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밖에는 눈이 한 자 넘게 쌓이는 한겨울인데 장미는 빨갛게 꽃을 피웠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바닥에 시들어 떨어진 마른 잎과 새로 잎이 나고 꽃이 핀 모습을 그대로 사진으로 담아 두었습니다. 또다른 꽃병의 국화는 두어 달쯤 지나면서 하얗게 실뿌리가 자라났습니다. 꽃을 살리기 위한 특별한 처방을 할 줄 모르는 저는 무엇이 꽃을 살리고 있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벽도 바닥도 지붕도 황토로 지어졌으니 황토에서 나온다는 원적외선의 힘일까? 아니면 벽 한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햇볕이 방 안 가득 들어오니 그 햇볕의 힘이 꽃을 살리는 걸까? 숲에서 나오는 바람의 기운이 다른 곳보다 청량하니 바람의 힘일까? 바위틈에서 솟는 석간수의 기운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이 합쳐서 꽃을 살리고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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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힘이 꽃을 살리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밑동을 가위로 뚝 잘라서 신문지에 말아 가지고 온 꽃이 한겨울에도 녹색의 잎을 내밀고 붉게 꽃을 피우는 모습을 여러 달 지켜보며 저는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 꽃을 살린 흙의 기운, 햇볕의 기운, 바람의 기운, 물의 기운이 방 안 가득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이 났습니다. 그 꽃 옆에 저도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니 꽃만 좋은 게 아니라 저도 좋았을 게 아닙니까? 아침에는 한 시간씩 꽃 옆에 앉아 명상을 했고 낮에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니 꽃만 새잎이 나는 게 아니라 내 몸 어딘가에도 새잎이 돋고 있을 게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기분이 좋아지니 몸도 좋아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숲은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무들이 피톤치드를 뿜어내고 계곡물에서 음이온이 솟아나오고 햇볕이 세로토닌 분비를 원활하게 하는 곳이 숲입니다. 그런 과학적인 설명을 모르고서도 숲에 들면 마음이 청안(淸安)해집니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열려 산길에서 만난 사람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긴장을 풀고 여유를 되찾게 됩니다.
모토야마 히로시 박사는 숲에서 생긴 종교와 사막에서 생긴 종교를 비교하면서 숲에서 생긴 종교는 자연과의 일체감, 동질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자연과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벌레, 나무나 풀조차도 그 본질(영혼)은 신과 동일하며, 따라서 그들은 모두 신에게 돌아갈 수 있거나 혹은 신과의 합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주의 보편적인 신인 브라흐만과 인간의 개인아(個人我) 아트만이 동질이라고 하는 힌두교의 사상”이나 “일체존재는 그 본질에서 부처와 같은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가르치는 불교”가 모두 풍부한 물과 숲이 있는 자연에서 생긴 종교입니다. 물이 적은 사막지대에서 태어난 종교는 신과 인간, 인간과 동식물, 몸과 마음의 엄격한 구별이 있다고 모토야마 박사는 말합니다.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살기 위해 항상 물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물을 찾아 가기 위해 에이(A)인지 비(B)인지 결정해야 하며, 공동체를 만들어 유지해야 하고, 강력한 리더 밑에서 일사불란하게 행동을 취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엄격한 구별, 계율, 복종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막의 자연은 인간에게 시련을 안겨주고 내치는 데 비해, 삼림지대의 자연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하찮은 벌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품에 안고 길러주는 존재입니다. 그동안 우리도 사막에서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늘 지치고 목이 마르고 불안하며 길을 잃을까봐 두렵고 힘 있는 이들 밑에서 그와 함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어야 비로소 안심이 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사막에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련도 많고 위험도 많으며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고, 한 손엔 경전 한 손엔 칼을 들고 있으면서도 아침마다 “오늘도 무사히” 하고 기도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사막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곳에서 살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병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나무의 치유력>이란 책을 낸 파트리스 부샤르동은 질병과 고통은 “삶의 여정에 놓인 장애물이 아니라 우리의 위치를 알리는 지표”라고 합니다. “육체적인 증상은 삶의 과정에서 우리가 처한 단계를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몸이 아프다는 건 우리가 지금 위험한 곳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더 이상 이런 길로 계속 가면 정말 돌아올 수 없는 곳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의 신호라는 거지요. 사막 같은 세상에서 벗어나 숲으로 들어가면 약을 먹지 않아도 저절로 병이 낫는다고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일컬어 자연치유라고 하는데, 병이 내는 경고의 소리를 알아듣고 삶의 위치를 바꾼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렇게만 해도 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입니다.
숲에서 참으로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았던 스콧 니어링은 숲에 들어가 사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경쟁적이고 공업화한 사회양식에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던 네 가지 해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 네 가지 해악이란 물질에 대한 탐욕에 물든 인간들을 괴롭히는 권력, 다른 사람보다 출세하고 싶은 충동과 관련된 조급함과 시끄러움, 부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에 반드시 수반되는 근심과 두려움, 많은 사람이 좁은 지역으로 몰려드는 데서 생기는 복잡함과 혼란”을 말합니다.
말년에 그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은 것은 젊은 시절의 화려한 활동 때문이 아니라 아내 헬렌 니어링과 숲에서 살아가는 독특하고 절제된 생활방식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숲에 들어가 지내다 그의 이름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그의 좌우명도 참 좋아합니다. “…간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은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 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삼을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 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저녁숲>이란 시는 그런 스콧 니어링을 생각하며 쓴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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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소리로 우는 새들이 서로 부르며
나뭇가지에 깃드는 걸 보며 도끼질을 멈춥니다
숲도 오늘은 여기쯤에서
마지막 향기를 거두어들이는 시간엔
나무 쪼개지는 소리가 어제 심은 강낭콩과 감자에게도
다람쥐와 고라니에게도 편하지 않을 듯싶습니다
(…)
흐르는 물에 이마를 씻고
바위 위에 앉아 생각해 보니
당신처럼 오늘 하루 노동하고 읽고 쓰고
자연과 사람의 좋은 만남을 가지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흩어진 나무토막과 잔가지들을
차곡차곡 쌓듯 내 삶도 이제는
흐트러지지 않고 질서가 잡힐 것이며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천천히 그리고 간소하게 저녁을 맞이할 것입니다
어둠이 숲과 계곡을 덮어오자
땅 위에 있는 풀과 나무들이 일제히 별을 향해
손을 모읍니다
(…)
오늘밤은 아직 구름에 가린 별들이 많고
내 마음에도 밤안개 다 걷히지 않았지만
점차 간결한 삶의 단순성에 익숙해지고
일관성을 잃지 않으며
내 눈동자가 우주의 빛을 되찾으면
별들이 이 골짜기에 가득가득 몰려올 것임을 믿습니다
내 안에 가득 차 있던 것들 중에
빠져나갈 것은 빠져나가고
제 자리로 돌아올 것은 돌아와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얼굴도 웃음도 제 본래 모습을 되찾고
의로움도 선함도 몸속에서 원융하여
당신처럼 균형 잡힌 인격이 되어 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여름 산도 가을 숲도 다 기뻐할 것입니다
생의 후반에 당신을 알게 되어서 기쁩니다
생사의 바다를 건넌 곳에서도 편안하시길 빕니다
숲 속에서도 별 밭에서도 늘
완성을 향해 가고 있을 당신을 그리며
-졸시 <저녁숲 -스콧 니어링을 그리며> 중에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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