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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괸 아이들…날갯짓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본문
눈물 괸 아이들…날갯짓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 |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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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같은 아이들과 글쓰기를 하면서 서로서로를 알아갔습니다 집 나간 엄마가 보고프다고 쓴 혜경이 자매를 공장에서 찾았습니다 ‘이 땅의 아이들’ 책 선인세·큰애 돌값…
제대 후 복직한 학교는 청원군 부용면에 있는 부강중학교였습니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 고개를 돌리면 금강 물줄기가 굽이돌아 흘러내려가는 게 보였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순박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국어 시간에 글쓰기를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은 글쓰기를 싫어했습니다. 글은 소질 있는 애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해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써요?’ 하고 물으면 네 삶의 이야기를 쓰라고 했고, ‘어떻게 써요?’ 하고 물으면 있는 그대로 쉽고 진솔하게 쓰라고 했습니다. 잘 만들어내는(make) 게 글이 아니라,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는(write) 게 글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우선 알고 있는 이야기, 경험하고 느낀 이야기, 주변의 이야기, 가까운 사람들 이야기를 쓰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글을 써 냈습니다.
요즈음 엄마는 일을 하러 다니신다. 그래서 아침 저녁마다 내가 밥을 해야 한다. 아침에 엄마가 밥하라고 깨워서 일어나 시계를 보면 5시 반쯤 된다. 엄마가 나에게 밥을 맡기고 일하러 갈 때 엄마의 마음은 어떠실까? (…) 그리고 어느 때는 우리집은 왜 이렇게 가난할까? 왜 우리만 이렇게 고생하며 살까? 하는 생각이 드는 때도 있다.
- <우리 엄마>, 2학년 이순자
글 속에 삶의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인데 삶의 어려움과 고단함을 똑같이 나누어 진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엄마를 걱정하고 있었고 가난과 숙명 이런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쓴 글을 읽어보라고 하면 글을 읽다가 우는 아이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친구들이 따라서 울었습니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 되면 다가가 서로 위로하곤 합니다. 상을 받거나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고, 마음을 나누고, 정서를 아름답게 순화시키며, 삶을 가꾸어가는 게 글이라는 걸 알게 했습니다.
가르치는 제게는 아이들의 가정 형편이나 처지, 마음 상태, 이런 걸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오덕 선생은 “고난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는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그들 스스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위안이 되는 것이며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밝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글도 있었습니다.
나는 가장 하기 싫은 것이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글을 써오라면 억지로 할 수 없이 꾸며 가지고 글을 써냈다. 그러나 그 글은 진실된 글은 하나도 없었다. 글을 써 보면 처음에는 잘 써지다가 한두 장쯤 쓰며는 쓸 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통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몇 주 전에 선생님께서 반공에 대한 글짓기를 해오라고 하셨다. 나는 그냥 지나가지 뭐 하고 글짓기를 안 해왔다. 그런데 선생님은 반공글짓기 안 해온 사람 나오라는 것이었다. 그땐 후회해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와 우리 친구들은 종아리 5대씩 맞았다. 정말 아팠다. 다 때리고 난 선생님 말씀이 내일까지 다 써와 하고 말씀하셨다. 할 수 없이 친구 것을 갖다가 베꼈다. 간신히 종아리 맞는 것은 면했다.
- <반공글짓기>, 2학년 이춘우
이 아이는 가장 하기 싫은 것이 글을 쓰는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썼는데 발표를 하고 난 뒤 아이들로부터 굉장한 박수를 받았습니다. 아이들도 비슷한 억압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억지로’, ‘할 수 없이’, ‘꾸며 가지고’ 쓰는 글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가를 아이들이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강요에 의해 맹목적으로 가식의 글을 쓰기 때문에 진실된 글이 없다고 하는 말은 곧 글은 진실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행사를 위해 강요당하는 글쓰기가 많았습니다. 사회정화나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 글짓기를 내일 아침까지 해오라고 하면 아이들은 집에 가는 길에 현금 뭉치를 주워 갈등하고 고민하다 지서에 갖다 주었더니 참 기뻤다고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상을 받습니다. 정직한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한 글짓기대회에서 거짓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를 글로 써서 상을 받는 것이지요.
이런 “어른들의 억압에서 해방시켜서 자극을 주고 어른들의 잔재주를 가하지 않고 그들 자신이 창조한 것을 응시하게 한다면 장래의 인류는 얼마나 훌륭한 가능성을 갖게 될 것인가?” 하고 프뢰벨은 말한 바 있습니다.
꼬마아이들은 분꽃이 심어져 있는 길을 지나다 꽃을 하나 따서 귀에다 살짝 넣고 귀거리라며 좋아한다. 나도 그 아이들처럼 한 송이 따 귀에다 살짝 넣어본다. 분꽃의 향기는 참 좋다. 학교까지는 40~50분이 걸린다. 아이들은 매일 만나면서도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은지 여기저기서 까르르 하고 웃는 소리가 난다.
- <등교길>, 2학년 김영미
분꽃 한 송이를 따서 귀에 넣고 오는 아이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밝게 웃으며 걸어오는 동안 쏟아지는 웃음소리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들이 환하고 활기차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혜경이의 집안 사정을 알게 된 것도 혜경이가 쓴 <보고픈 엄마>라는 글 때문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엄마가 집을 나가 엄마 없이 살면서 명절만 되면 엄마가 보고 싶어 운다는 글이었습니다.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에 얼굴이 순하고 곱고 몸은 허약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3학년이 되자 혜경이가 학교에 나오질 않았습니다. 가정방문을 가 보니 혜경이 아버지는 10년째 병고에 시달리고 있고,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삼촌네 식구까지 열 식구가 한집에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1학년에 입학한 남동생 시웅이를 학교에 보내는 일도 힘겨워 혜경이, 혜영이 두 자매가 학교를 그만두고 대전에 있는 공장에 나가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혜영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해 쉬었다가 올해 중학교에 들어오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둘 다 학업을 중단하고 공장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 공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혜경이 할머니는 대전 터미널 근처라고만 하셨습니다. 일요일 날 대전 터미널 근처를 찾아다녔습니다. 공터나 아파트 지하실에 있는 봉제공장들은 영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몇 군데 허탕을 치고 성남동 굴다리 밑 대성산업사에서 혜경이를 만났습니다. 두 자매는 블라우스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혜경이는 핀을 꽂는 시아게 일을 하고, 혜영이는 하루 종일 가위질만 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이, 중학교 2학년을 마친 나이에 공장 일을 한다는 건 너무 무리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학비를 대줄 테니 학교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희 둘이 벌어서 남동생 학비를 대야 해요. 저를 돕는 셈치고 시웅이를 도와주세요.” 이렇게 말하고는 혜경이는 두 시간을 앉아서 울었습니다. 혜경이가 2년 동안 한 번도 도시락을 싸오지 못했다는 걸 저는 늦게서야 알았습니다.
혜경이를 끝내 데려오지 못하고 돌아온 뒤 저녁에 온누리출판사 김용항 사장과 김창규 전도사를 만났습니다. 혜경이 자매의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몰라서 도와주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알고 있는데 그냥 있을 수는 없다”고 하면서 아이들을 데리러 가자고 하는 겁니다. 학생들이 쓴 글을 모아 온누리출판사에서 <이 땅의 아이들>이란 제목으로 책을 내기로 했었는데, 그 책의 선인세를 받아서 삼남매의 학비를 마련해 보기로 했습니다. 밤차로 다시 대전으로 내려갔습니다. 혜경이에게 너희 삼남매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책임질 테니 집으로 가자고 했더니, 그 소리를 듣던 혜경이가 픽 하고 쓰러지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서 급하게 혜경이를 들춰 업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얼마 후 혜경이가 깨어나 둘을 데리고 왔습니다. <스승의 기도>는 그 학교에서 아이들이 졸업식을 끝내고 썰물처럼 빠져나간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며 쓴 시입니다.
날려 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웁니다
- 졸시 <스승의 기도> 전문
도종환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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