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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역에 처해진 날개 - 박형준 본문

문학의 즐거움/시사랑

노역에 처해진 날개 - 박형준

초록느낌 2010. 9. 24. 23:28

 

 

 

 

 

 

 

 

누구나 날개를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 남몰래 우표를 모으거나

판화를 수집하는 것처럼

 

 

내가 갖고 있는 날개는

은밀한 세계에 바쳐졌다,

어느날 스크랩해둔 세계가

얼마나 작은지 깨우치고

어른이 된 아이들은

거추장스러운 날개를 떼어버렸지만,

 

장님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을

회피하는 것은 아직도 그 뒤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축제를

그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검은 도랑물이 흘러가는

공장지대의 아파트에 혼자 산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그들이 나의 날개를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금기한 세계에

갇혀 살기 때문이다

 

달빛이 채색하는 보름밤이면

나의 날개는 커다란 그림자를

창문에 나타내곤 한다

 

그런 밤이면 나 역시 떠나고 싶다

이 세상 밖 불꽃을 물고 하늘의 검은

심연 속으로 곧장 날아가는 로켓처럼

 

나는 창문을 닫고 산다

초인종은 내게 날개를 감추라는 신호이다

공장의 기계 소리가 식은 금속이 번쩍이는

검은 도랑물을 건너, 쇳덩이를 끌 듯

무거운 머리를 침대에 눕힌다

나는 이틀이고 사흘이고 잠만 잔다

 

그동안 비만 죽죽 내린다

아스팔트에 짓뭉게진 새 한 마리,

빗물에 둥둥 떠 흘러간다

 

날개만  남은 납작해진 죽은 새는

지상의 노역으로부터 끝내 자유롭지 못한

내 영혼의 상징이다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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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들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짓도 드물 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없어진 것이다.

그 시간이 어떤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더라도 현재의 삶에서 그 흔적은 기억일 뿐이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나는 어디서 위로를 받아야 하나.

양의 문제가 있을 뿐, 현재나 미래는 과거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를 잊고 있을 때가 많다.

우리들은 달려야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노예들이다.

보들레르의 시 [각자 자기 자신의 환상을 ]에서의 '환상'의 노예들처럼, 무엇엔가 짓눌려 음울한 표정으로

쉬지 않고 어디론가 가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쉬기위해,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해 산이나, 바다, 그밖의 명소를 찾는다.

대부분이 그렇다.

법관이 되길 원하고 의사가 되길 원한다.

좀더 편해지려고 난리법석이다.

정말 하고 싶은 일, 해야할 일은 뒷전이다.

우리에겐 벌써부터, 나만이 좋아하는 어떤 곳이 사라졌다.

그것뿐 아니다.

어느때부턴가 세상이 너무 환하고 잘 꾸며진 통조림 깡통 속과 같이 느껴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한시라도 혼지 있으면 좀이 쑤신다.

몰려다니며 편을 만들어야 안심이 된다.

커다란 기계의 부품이 되지 못하면 실패한 삶이 된다.

항시 견딜 수 없이 불안하고 초조하다.

{발문/ 이윤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