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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틱 구름에 휩싸인 얼굴 / 김지녀 본문

문학의 즐거움/시사랑

루나틱 구름에 휩싸인 얼굴 / 김지녀

초록느낌 2010. 4. 9. 15:12

 

 

 

 

 

창문 없는 방에 누워 있으면 어느 순간 이마에 고인 미열이 참 따뜻하다

무릎 나온 바지를 입고 잠든 엄마 뱃속

여기는 얇은 주름이 잡힌 호수의 밑바닥

손톱으로 긁어 보면

이곳에 살다 간 사람들 살냄새가 바스스 일어나 말을 건네고

기침이 많은 밤을 나는 소름 돋는 눈빛으로 느낀다

낯선 구름을 데리고 온 계절 앞에서

내 얼굴은 곰팡이 슬어 가는 벽이 되었다가 깊은 우물이 되었다가 하얗고 동그란 *달이 되었다가

다시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끌어 담지 못하는 그물

나는 한 달에 한 번 사라지는 그늘

어제는 이곳에 나를 뚝 떼어 놓은 배꼽이 간지러워 바닥을 뒹굴거리다

목이 말랐고

목매달고 싶었다

그러나 식물처럼 가만히

내 안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때

몇 겹으로 덧바른 꽃무늬 벽지에선 시간의 뒷모습 냄새가 났다

가끔 얼굴을 씻고 저녁을 만나도

저기 저 북극에서 보내온 편지에는 차갑고 무거운 글자들이 떠다닐 것만 같고 그 편지의 두 번째 혹은 네 번째 줄에는

누군가 흘리고 간 웃음이 얼어 있을지 모른다, 는 생각

오늘은 내 뒷모습이 보고 싶다, 라고 쓴다

식어 가는 이마에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유리병에

지구의 기울기를 느끼는 이 순간에

푸른 나뭇가지 끝에 걸려 점점 일그러지는

얼굴, 나는 한 달에 한 번 추억되는 구름

 

 

 

 

 

*문 페이스(Moon face) ;우울증 치료제의 부작용으로 생기는 증상

 

 

 

 

 

 

-시소의 감정 / 김지녀시집/민음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