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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즐거움/시사랑

저녁 연기 / 최영호

초록느낌 2009. 6. 19. 14:53

 

 

 

저 혼자 다 타 버린 노을 뒤로
적막이 오면
내 울안으로 내리던 연기,
저녁 연기는 그리움입니다


이내 솔솔 풀려 드는 솔치골(松致理),
또 다시 아린 빛깔로 차 오르면
코끝에 와 닿는 청솔가지 타는 냄새
그리고 어머니, 종부 되어
분 향내 한 번 마음대로 피울 수 없었던
내 어머니


옹솥에는 쌀을 앉히고 가마 솥에는 국을 끓이고,
역풍이라도 불어 와 불이 들지 않는 날이면
연기가 온 마을을 매캐하게 덮었습니다
맵디나 매운 연기에 취해 눈물을 퍼 올리면서도
아궁이 앞을 나는 맴돌았지요
그 곳에 묻어 둔 감자 두어 알, 다 타 버릴까
애타던 마음을 어머니는 알고나 계셨을까요


뒤꼍 장독대에 쭈그리고 앉아
아린 눈 질펀하게 울음을 흘릴 때면
하늘로 하늘로만
구름 기둥을 말아 올리는 연기가
몹시도 서럽기만 하였습니다
목젖이 아프도록 올려다 본 하늘,
유난히도 노을이 붉게 타던 저녁이면
더욱더 드높이
꾸역꾸역 치솟아 오르던 하얀 연기


저녁 연기는 그리움,
어머니의 행주치마 자락입니다
달뜨기 전
후미진 어둠 속 경계의 밖으로
구수한 밥 냄새 청솔 가지 위에 걸리고
별들이 내리는 시간 속을 더듬어
모락모락 피어나던
어머니의
기도, 기도, 기도